2022년10월22일 8번
[과목 구분 없음] 다음 일기의 소재가 된 절에서 볼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? [1점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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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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②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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③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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④
(정답률: 68%)
문제 해설
정답> ①
'오늘은 가족과 함께 경상북도 경주 토함산에 있는 절에 다녀왔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이어 '8세기 중엽 김대성이 조성했다고 전해지는 이 절을 둘러보며 부처의 나라를 이루려고 노력하였던 신라 사람들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다. 특히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신라의 불교문화를 배울 수 있어서 뿌듯하였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마지막으로 '청운교과 백운교'가 사진과 함께 제시되어 있다.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[일기]의 소재가 된 절은 불국사임을 알 수 있다.
불국사 삼층 석탑, 즉 석가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우고, 그 위에 상륜부를 조성한 통일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보여준다(국보 제21호)(751, 통일 신라 경덕왕 10). 도굴로 손상된 탑을 보수하던 중 내부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기도 하였다.
오답 해설>
② 쌍봉사 철감선사탑의 쌍봉사는 전라남도 화순군에 위치해 있다. 국보 제57호인 쌍봉사 철감 선사 승탑에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은 불교 선종이 수용된 이후인 9세기부터 유행하였다.
③ 발해의 이불병좌상은 발해의 동경 용원부 유지에서 발견되었다. 현재는 일본의 동경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. 이불병좌상은 석가불(석가여래불)과 다보불(다보여래불)이 만나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불상으로 표현한 것이다.
④ (통일) 신라 시대의 범종인 성덕 대왕 신종은 원래 경북 경주에 있었던 사찰인 봉덕사에 걸려 있었다.(국보 제29호). 그러다 조선 세조 때 역시 경주에 있었던 영묘사에 옮겨 걸었다가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은 것을 1915년에 경주 박물관으로 옮겼다. 성덕 대왕 신종은 성덕왕(재위 702-737, 제33대)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들인 경덕왕(재위 742-765, 제35대)이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, 그의 아들(즉 성덕왕의 손자인) 혜공왕(재위 765-780)이 완성한 것이다(771, 신라 혜공왕 7)(국보 제29호). 일명 '봉덕사종' 또는 '에밀레종'이라고도 한다.
'오늘은 가족과 함께 경상북도 경주 토함산에 있는 절에 다녀왔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이어 '8세기 중엽 김대성이 조성했다고 전해지는 이 절을 둘러보며 부처의 나라를 이루려고 노력하였던 신라 사람들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다. 특히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신라의 불교문화를 배울 수 있어서 뿌듯하였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마지막으로 '청운교과 백운교'가 사진과 함께 제시되어 있다.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[일기]의 소재가 된 절은 불국사임을 알 수 있다.
불국사 삼층 석탑, 즉 석가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우고, 그 위에 상륜부를 조성한 통일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보여준다(국보 제21호)(751, 통일 신라 경덕왕 10). 도굴로 손상된 탑을 보수하던 중 내부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기도 하였다.
오답 해설>
② 쌍봉사 철감선사탑의 쌍봉사는 전라남도 화순군에 위치해 있다. 국보 제57호인 쌍봉사 철감 선사 승탑에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은 불교 선종이 수용된 이후인 9세기부터 유행하였다.
③ 발해의 이불병좌상은 발해의 동경 용원부 유지에서 발견되었다. 현재는 일본의 동경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. 이불병좌상은 석가불(석가여래불)과 다보불(다보여래불)이 만나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불상으로 표현한 것이다.
④ (통일) 신라 시대의 범종인 성덕 대왕 신종은 원래 경북 경주에 있었던 사찰인 봉덕사에 걸려 있었다.(국보 제29호). 그러다 조선 세조 때 역시 경주에 있었던 영묘사에 옮겨 걸었다가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은 것을 1915년에 경주 박물관으로 옮겼다. 성덕 대왕 신종은 성덕왕(재위 702-737, 제33대)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들인 경덕왕(재위 742-765, 제35대)이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, 그의 아들(즉 성덕왕의 손자인) 혜공왕(재위 765-780)이 완성한 것이다(771, 신라 혜공왕 7)(국보 제29호). 일명 '봉덕사종' 또는 '에밀레종'이라고도 한다.